“안정된 돈벌이 하고 싶어 도둑질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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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돈벌이 하고 싶어 도둑질 택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3.09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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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출신 40대男, 직업 버리고 ‘도둑’된 사연…8년간 쥐도 새도 모르게 236회 강도∙성폭행

줄 타고 벽 타서 4억2천여만 원 강취…증거인멸 철저
범행 중 부상, 치료 받다 덜미…“잡힐 줄 알았다” 담담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경찰에 붙잡힌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한 순간의 실수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고 말하듯 지난달 27일 강도, 강간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한모(43∙남)씨 역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생활고 때문에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웠을 뿐, 8년간 200여 차례에 걸쳐 반복됐던 송씨의 범행은 대담했다. 위태위태한 밧줄 하나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도 하고, 아예 밧줄조차 없이 흔들리는 가스배관을 발판삼아 건물 외벽을 타고 범행목표물이 된 주택 내부로 침입하기도 했다. 또 강도행각 후에는 여유롭게 여성거주자와 거사(?)를 치렀으며, 범행장소를 재차 방문하는 것을 꺼려하기는 커녕 일부 특정 지역에서 수십회의 절도∙성폭행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부평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수원, 안양, 광명, 부천, 인천 등 지역을 주무대로 2001년 3월부터 최근까지 8년여 간 200여차례의 성폭행과 절도행각을 일삼아 온 40대 한모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2007년 7월 13일 새벽 3시 30분께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소재의 한 주택에 침입해 이모(51ㆍ여)씨를 위협한 후 현금, 금반지 등을 강취하고,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한씨는 자신의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주요 범행지역을 매일 순회,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을 물색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씨는 목표대상이 정해지면 파이프 절단기를 이용해 철창살을 절단한 후 주택 내부로 침입했으며, 이 같은 수법으로 4억2천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취, 모두 생활비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에서 숙식해결하고 범행장소도 물색

일명 ‘수도권 발바리’로 알려진 한씨가 처음 범행을 시작하게 된 때는 지난 2001년 3월. 당시 제주도에 살고 있던 한씨는 제주시 한 다세대 주택에 침입해 14세, 16세 어린 자매를 성추행하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등 파렴치한 행동을 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한씨는 잠잠하게 지내는 듯 했지만 일용직으로 일하던 보일러 시공이 돈벌이가 시원치 않자 2004년 ‘절도범’으로 전업, 본격적인 강도∙강간 범행에 돌입했다. 물론 아내와 두 딸들에게는 여전히 보일러 시공일을 하는 남편이자 아빠였다.

이때부터 한씨는 가족들에게 “지방에 작업스케줄이 잡혀 출장을 가야한다”며 핑계를 대고 집에서 머문 시간은 일주일에 1~2번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한씨가 집을 떠나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빨간색 구형 프라이드를 집이자 이동수단, 또 범행장소 물색을 위한 작업실로 사용해왔다. 한씨의 모든 범행계획은 차 안에서 이뤄졌던 것.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한씨가 타고 다녔던 차 내부에는 잠잘 때 사용했던 이불과 옷가지, 헤어 젤, 머리빗 등 생활에 필요한 소도구들이 구비돼 있었다.

서울 외곽순환도로 인근 지역서 집중 범행

절도를 주업으로 삼은 한씨는 이전보다 바빠졌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지역을 탐색하기 위해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자주 이용했고, 때문에 범행 역시 이 인근 지역에서 이뤄졌다. 또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도록 범행지역을 선별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은평구 불광동은 상대적으로 한씨 범행에서의 안전지대가 됐다.

한씨는 늦은 밤이나 새벽시간에는 남의 집 창문은 뜯고, 오후까지 취침, 또 낮에는 각각의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동네 정세를 살폈다. 절도행각을 주업으로 삼다 보니 어느 집에는 몇 명이 살고, 어느 시간에 집이 비며, 또 몇 시쯤 돌아오는지 체크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게 한씨의 진술.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비교적 침입이 쉬운 반지하나 층수가 낮은 집을 노렸다. 특히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은 놓치지 않고 범행을 벌였다. 그중 층수가 높은 집은 옥상에 밧줄을 매달아 창문으로 잠입하기도 했으며,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는 등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기도 했다. 잠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창문의 쇠창살은 철물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파이프 절단기를 이용해 간단하게 제거했다.

경찰조사결과 한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총 236회에 걸쳐 강도∙강간 행각를 벌여 4억2200여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훔쳤으며 이중 41회는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까지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씨는 범죄현장에서 체액이 발견되지 않도록 수건에 사정한 후 현장에서 이 수건을 갖고 빠져 나오는 등의 치밀함을 보였다. 게다가 200여 곳의 범행현장에는 단 하나의 지문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게 경찰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도둑질이 안정된 생활 보장?

그렇다면 이 처럼 치밀했던 8년여에 걸친 ‘도둑 발바리’ 행각은 어떻게 덜미를 잡히게 됐을까. 다름 아닌 ‘돼지저금통’의 활약 덕분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2007년 2월, 한씨는 그간의 수법과 마찬가지로 경기도 광명에서 또 한건의 범행을 저질렀다. 한씨는 범행현장에 있던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모두 쓸어 담았다. 그러던 중 한씨의 눈에 띈 것이 바로 돼지저금통. 한씨는 저금통 속의 동전만을 갖고 나가기 위해 칼로 저금통을 뜯다가 손에 심한 부상을 입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이후 발바리 사건 기획수사에 돌입한 인천 부평경찰서에 포착됐고, 경찰은 범행현장에 있던 혈흔을 단서로 수도권 병원 응급실을 수소문해 용의자 한씨를 특정해내는데 성공했다.

경찰에 붙잡힌 한씨는 경찰에서 “일용직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며 “그런데 가정집 몇 군데를 털다보니 돈도 쉽게 벌고, 부인에게 매달 200만원 정도의 생활비도 줄 수 있어서 이후 계속해서 도둑질을 해왔다”고 말했다. 한씨의 말에 따르면 성폭행은 절도행각에 있어서 ‘선택옵션’일 뿐이었다는 것.

또 한씨는 경찰의 긴급체포에도 전혀 놀란 기색 없이 태연한 모습을 유지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한씨는 경찰에서 “언젠가는 잡힐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잡히는 그 날까지 나름대로 가장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끊임없이 강도행각을 벌여왔다”며 “지금 심정은 죽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한편 한 경찰관계자는 “한씨의 범행이 수년간 수백 회에 걸쳐 벌어졌지만 수사과정에서 피해여성들이 피해사실을 숨기다보니 피의자를 특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성범죄의 경우 피해사실이 드러났을 때 피해자를 피해자로 보지 않는 우리사회의 인식이 개선돼야함을 보여줬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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