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 아가를 죽였어야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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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아가를 죽였어야 하는 건가요”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3.09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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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 고민에 따가운 시선까지…‘리틀맘’들의 애환

미혼모 위한 대안학교 없어 교육부재 심각
‘학업 중단 → 경제적 빈곤’ 악순환 이어져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예로부터 한국사회에서 ‘性’은 금기시돼왔다. 최근 들어서 많은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선뜻 입에 올리기 민망한 화제임은 틀림없다. 특히 그중 미성년자의 性이 그렇다. 만약 10대 청소년이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면 그 학생은 학교사회는 물론이고, 가정에서조차 배제되기도 한다. 아이를 출산할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무려 2만여명이 넘는 10대 소녀가 임신을 했으며, 이 중 절반이 아기를 출산했다. 이 가운데에는 아이를 입양 보낸 경우도 있고, 양육을 택한 경우도 있다. 10대의 몸으로 ‘리틀맘’의 길을 택한 후자의 경우, 이들은 사회의 질타 속에서 온갖 고충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지만 10대 양육 미혼부모, 특히 미혼모에 대한 정부∙지역사회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저는 15살 문OO라는 가출소녀 입니다. 가출 후 남자들하고 몇 번의 성관계를 가졌는데 덜컥 임신이 됐어요. 현재 부모님하고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어서 도움 받을 곳도 없고, 연락이 닿더라도 차마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가 나질 않아요. 주위 친구들은 낙태를 권하는데 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요. 제가 머무르면서 아이도 낳고 기를 수 있도록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요”

지난 4일 미혼모복지사업을 하고 있는 동방사회복지회 게시판에 고민을 털어 놓은 한 10대 여자청소년의 글이다. 양육능력은 없어도 아이는 지울 수 없다는 것. 이처럼 최근 양육을 선택하는 10대 미혼모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 8개 미혼모시설에 입소한 양육미혼모 중 10대 청소년이 차지 비율은 1998년 22.9%에서 2001년 40.7%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양육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외부로부터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가 미혼모자시설 등에 거주하거나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청소년 양육미혼모 등 106명의 10대 미혼모를 대상으로 <청소년 양육미혼모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 중 56.6%가 미혼부나 가족과 친척 등의 도움 없이 혼자 양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아기 때문에 적절한 일자리도 찾을 수 없어 기저귀 값, 분유값 등을 조달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아이를 혼자 돌보려다보니 몸과 마음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취업(33.3%), 학업지속(21.9%) 등이 꼽혔다.

분유 값 모자라 외모치장 꿈도 못 꿔

10대 양육 미혼모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다. 미혼모 중 절반 가량은 혼자 아이를 돌봐야하는 경우에 처해 있어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또 누군가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이도 어리고, 정규 학업마저 끝내지 못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때문에 파트타임이나 일용직에 종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상 양육미혼모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저소득 한부모가족지원제도 등이 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리틀맘의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 정작 10대 미혼모는 부모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 있더라도 수급권자로 인정받기 힘들다.

또 후자의 경우에는 월 5만원의 양육비 지원이 전부라 이들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인의 아이를 입양할 경우 정부에서 양육비 명목으로 월 1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혼모에 대한 양육비 지원 수준은 그의 딱 절반인 셈이다.

모 포털 사이트 미혼모들의 모임 카페에 글을 올린 한 18세 리틀맘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50만원 정도를 받고 있는데 그 돈으로로는 분유값을 충당하기에도 빠듯하다. 예쁜 옷, 예쁜 악세사리 등을 사는 것은 이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며 “고교 중퇴 학력이라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이제 이 곳(편의점)에서조차 일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고 털어놨다.

87.6% ‘학업 계속하고 싶다’…그렇다면 현실은?

이들 미혼모들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점은 학업을 중단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 점점 불러오는 배를 숨길 수 없어 스스로 자퇴를 선택하거나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학교측에서 자퇴를 종용한다는 게 미혼모들의 이야기다.

지난해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10대 미혼모 학력 중 ‘중∙고등학교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2년 77.4%, 2003년 78.4%, 2004년 78%로 저학력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학업중단은 곧 경제적 빈곤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10대 미혼모들에게도 교육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보안이 시급한 상태다.

실제로 10대 리틀맘들 역시 정규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7월부터 12월까지 미혼모 6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87.6%가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사실상 10대 미혼모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는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민간 등에서 운영되고 있는 미혼모 시설은 생활시설일 뿐 교육에 대한 부분은 배제돼 있다. 또 검정고시도 의무사항이 아닌 해당 시설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은 미혼모 시설에 학습공간을 마련해 교육청에서 교사를 파견, 학습을 지도하도록 하고 있다. 양육과 동시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으며 직업까지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性에 대한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교육은 90년대 방식에 멈춰있는 실정이다. 올바른 피임법과 피임의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이 80%에 이른다는 한 연구결과는 이 같은 낡은 성교육의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시대 흐름에 맞는 성교육과 함께 10대 미혼부모를 위한 프로그램, 정책마련도 필요하다. 때로는 사전예방보다 사후대책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 몇몇의 전문가들은 “미혼모에 대한 정부의 탄탄한 지원정책이 저출산을 극복하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류세나 기자<cream53@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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