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후 아이까지 낳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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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 후 아이까지 낳아드립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2.28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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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女 ‘대리모’ 빙자 수천만 원 가로채…대(代) 잇기 위해 대리모 만난 60대 노인의 꿈 ‘산산조각’

합궁 1달 만에 임신?…딴 사람 아이 임신 후 “우리 아이”
은폐 위해 낙태시술…낙태마저 숨기고 각종 명목 돈 요구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안녕하세요. 전 6살 된 딸아이가 있는 25세의 여성입니다. 혈액형은 B형이고 현재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 있어요. 주기적으로 만남을 갖는 것도 괜찮고 함께 생활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물론 몸에도 아무런 이상 없이 건강하고요.”

지난 16일 새벽 6시께 한 여성이 유명 포털사이트 회원전용 카페 게시판에 자신의 나이와 혈액형, 거주지역 등 신상기록을 적은 글을 올렸다. 언뜻 보면 재혼을 원하는 남자 혹은 애인감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의 실상은 대리모를 자청한 한 여성의 구직(?)광고다. 불임부부의 간절한 소망인 아이를 대신 낳아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겠다는 것. 불임부부의 마지막 희망을 담은 대리모 출산, 하지만 은밀한 거래일수록 그에 따른 위험은 더욱 큰 법이다. 다른 여성을 통해 대리 출산을 원하다 아이를 얻기는커녕 수천여만 원만 날리게 된 60대 노인의 사연을 <매일일보>이 취재했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지난 20일 자녀가 없는 노인에게 “아기를 낳아주겠다”고 접근, 7,400만원을 가로챈 A(43)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07년 12월께 브로커의 소개를 통해 자녀가 없는 B(65)씨를 만나, “아기를 낳아 주는 대신 나에게 임신비용과 생활비를 주고, 또 빚도 갚아 달라”면서 약 1년간 총 18회에 걸쳐 7,4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A씨는 제3인물의 아이를 임신했으면서도 B씨에게 B씨의 아이인 것처럼 속여 임신사실을 확인시킨 후 임신 2개월 만에 낙태수술을 했다. 수술 이후로도 A씨는 B씨에게 임신중인 것처럼 행동하고, 또 멀리 떨어져 살면서 출산한 것처럼 위장해 돈을 요구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서…”

충남 홍성에서 농사일을 하던 B노인 부부에게 20여년 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연탄가스 유출 사고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만 것. 이후 B노인 부부의 삶은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고 한다. 위험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신들의 불찰 때문에 대가 끊겼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기 위해 둘째를 가져보려 노력했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 대리모를 통해 B노인의 대를 이어보려고도 수차례 시도했지만 이 역시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게 낙담하고 지내기를 수년. 2007년 말경, B노인은 동네 다방을 찾았다가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받았다. B씨의 사정을 알고 있던 다방 주인이 ‘수차례 아이를 출산한’ 여성과의 만남을 제의한 것. 포기하고 있던 차에 이 같은 제안에 마음이 동해진 B씨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2007년 12월께 부인 몰래 대리모 역할을 해주겠다는 여성을 만났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바로 A씨. 이 둘은 목적달성(?)을 위해 첫 만남과 동시에 모텔로 향했다는 게 경찰관계자의 전언이다.

원정 임신작전의 결과는?

홍성군 다방 주인 등 다단계 브로커를 통해 B노인을 소개받은 A씨는 대리모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당시 거주하고 있던 인천의 집을 정리하고 홍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10여년전 이혼을 한 후 뚜렷한 직업 없이 혼자 살던 A씨에게 어느 지역에서 사는 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이사비용과 생활비 등은 모두 B노인이 부담했다.

이후 B노인은 틈나는 대로 A씨가 머물고 있는 집을 찾아가 성관계를 가졌다. 다방 주인이 강조했던 ‘수차례’의 출산경험 덕분일까. 이들이 만난 지 1달 만인 2008년 1월, 임신소식이 들려왔다. B노인의 부인은 물론 그간 성관계를 가졌던 서너 명의 대리모 자원자들도 모두 실패했던 꿈에도 그리던 ‘임신’이었다.

A씨는 B씨에게 병원에서 찍어온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에 신이 난 B노인은 집으로 달려가 A씨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부인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런데 기뻐할 줄 알았던 부인이 예상 외 반응을 보이자 B노인은 A씨가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태교에 몰두할 수 있도록 A씨가 처음 살던 지역인 인천에 전셋집을 얻어주고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이후 B노인은 A씨에게 한 달에 100만원씩의 생활비와 그 외의 병원비, 임산복 구입비, 빚 청산 등 A씨가 요구하는 금액을 송금해줬다. 그러던 2008년 9월, A씨는 “예정일보다 아이가 1달 일찍 태어났다”며 아이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으니 병원비를 송금해줄 것을 요구했다.

A씨의 행동이 바뀐 것은 그때부터였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에 기대감에 부풀어있는 B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A씨는 연락을 잘 받지 않았다. 간신히 연락이 닿으면 ‘산후조리 중이라 몸이 좋지 않다’, ‘아직 아기가 어려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없다’며 만남을 뒤로 미뤘다. 또 B씨가 직접 인천집으로 찾아 가려고하면 한사코 만류했다는 게 경찰에서 밝힌 B씨의 주장이다.

낙태 후에도 계속된 금전 요구

경찰조사 밝혀진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인천으로 올라와 B노인과 떨어져 살게 된 A씨가 인천으로 올라오자마자 낙태시술을 받은 것. 때문에 아이를 보여주러 내려갈 수도, 찾아오라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A씨는 경찰에서 “병원에서 노산이라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도 높고 아이가 건강하더라도 출산과정에서 아이와 산모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낙태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관계자는 “산부인과의에 따르면 기형아 여부는 임신 4달째에 알 수 있는데 당시 A씨가 수술은 한 시점은 2달째였다”며 “해당 병원에 A씨의 기록은 기형아 등의 이유가 아닌 단순 낙태시술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낙태 이후로도 끊임없이 돈을 요구해왔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빚만 잔뜩 안고 있던 A씨에게 ‘돈 줄’은 B노인 뿐이었기 때문. 그런 A씨가 B노인의 아이를 출산했더라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시술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같은 정황 탓에 B노인 측은 ‘A씨가 임신했던 아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날 경우 친자확인을 통해 진짜 아버지가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을 중요시 여긴 어른들의 마음을 악용한 사기사건”이라며 “A씨는 B노인에게서 3억원을 받아내 브로커들과 나누고, 후에 갖은 핑계를 대 B노인 부인자리까지 꿰 찰 생각까지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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