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정부의 꿈> 사이코패스 등장으로 공안정국 꿈 이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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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정부의 꿈> 사이코패스 등장으로 공안정국 꿈 이룰까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2.22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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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이코패스 공포증’ 내막은…‘철통치안 제공할 테니 침묵하고 순종해라(?)’

공포감 조성된 틈 탄 ‘공권력 강화’ 시나리오
치안부재∙부실 초동수사 등 정부책임 물타기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최근 벌어진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 존폐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일 법무부, 경찰청 등과 당정회의를 갖고 “사형집행이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이 높다”며 사형제 부활의 필요성을 전달했다. 반면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우리나라의 인권을 역행시키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여론에 조성된 공포감을 악용해 치안, 안전 이라는 미명아래 국가의 감시와 공권력 강화를 정당화 시키려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등이 주최한 ‘사형제 폐지를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2 강당에 사형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 일부분인 사형집행 장면이 상영됐다. 영화에서 사형수 정윤수(강동원 분)는 형이 집행되기 직전, 눈물을 쏟아내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그동안 도와준 이들에 대한 감사,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사죄, 남겨질 사랑하는 이에 대한 미안함 등등.

눈물 섞인 윤수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에 흰 두건이 씌워지고 목에는 밧줄이 걸린다. 이 장면에서 윤수의 지인은 물론 교도관들도 형이 집행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또 집행관 역시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등 망설임을 보인다. 죄의 대가라지만 한 생명을 죽여야만 하는 ‘정당한 살인’에 대한 고통을 표현한 대목일 것.

“보복성 사형제보다 효과적 수사 시스템이 먼저”

 ▲ 강호순의 눈빛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때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12월 30일이다. 이후 2009년 현재까지 12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2007년 12월 30일 국제사회가 인정한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됐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들은 존재했다. 지난 2004년 무고한 시민 13명을 살해한 정남규, 2006년 21명의 부녀자를 유린한 유영철, 그리고 올해는 7명의 부녀자를 연쇄살인하고 넷째부인과 장모를 방화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호순이 사형을 언도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월 현재 우리나라의 사형수는 58명이다. 이들은 모두 사람을 살해한 혐의로 최고형을 선고 받았으며, 범행수법 또한 매우 잔인했다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인권단체들은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죄를 뉘우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보복성을 띠고 있는 사형집행은 교정의 최선책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유영철 사건의 피해자 유족 중 몇몇은 사형제 폐지 운동을 돕고 있기도 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정원(67남)씨는 지난 2003년 10월 유영철의 손에 노모(당시 85)와 부인(당시 60), 4대 독자(당시 35) 등 세 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 “지금 이곳은 토론 열기로 가득 차 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춥다”는 말로 운을 뗀 고씨는 온풍기가 돌아가고 있는 실내에서 3시간 넘도록 이어진 토론회 내내 목에 두르고 있던 까만색 목도리를 풀지 않았다.

“가족들을 잃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조용한 곳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 청와대 근처인 종로구 구기동으로 이사를 한 것이었는데…. 그곳으로 이사 가자고 하지만 않았더라도 우리 가족은 죽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유영철을 죽인다고 해서 내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생명 하나가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유씨를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사형폐지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용서를 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가족들의 죽음은) ‘내 탓’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 서강대 법대 이호중 교수는 “최근 극악무도한 범행을 방지하기 위해 사형집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사형이 꼭 필요한지 그리고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분노의 차원에서 성급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며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면 곧바로 검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사검거 시스템을 갖추는 게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98년부터 2007년까지의 10년간 살인범죄의 건수는 1998년 966건에서 2007년 1,124건으로 16.3% 증가했다. 반면 사형제가 시행되던 이전 10년(88년~97년)까지 발생한 살인사건은 601건에서 789건으로 31% 증가했다. 사형집행이 흉악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은 통계적으로도 입증되지 않은 허구일 뿐이라는 것.

그들이 안전의 대가로 요구한 것은?

▲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지난 1일 오전 경기 화성 비봉IC 부근 국도에서 열린 현장검증에서 군포 노래방 도우미 배모여인 살해, 암매장 하는 모습을 재현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하지만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살인 행각이 드러난 시점에서 ‘사형 재집행’ 논란이 불거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분노와 비판여론 속에 사회적 합의나 토론 없이 재집행론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문제다. 

이와 관련 주한 영국대사관 아드리안 존스 정치참사관은 “정치인들은 국민 여론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여론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며 “신문의 머릿기사에 반응하는 데 머물지 말고 사회의 최선 이익에 따라 행동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 일본 등 예외적인 국가가 있긴 하지만 이제 사형폐지는 근대화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하나의 규범이 됐다”면서 “사형수들은 이미 교도소 안에 갇혀 있고 사회에 어떠한 위험도 주고 있지 않다. 그들에 대한 사형집행은 냉혈한적 사고이며 정당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시원 방화사건, 강호순의 등장, 각종 흉악범죄의 난립 등으로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사회흐름 탓에 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과 이와 동시에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요구되고 있다.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여성들의 귀가시간이 빨라졌다는 게 이를 보여주는 단초다. 사이코패스의 등장으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사회에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게 됐다. 고시원 방화사건의 피의자와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경우도 조사결과 사이코패스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일종의 정신질환인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의식 없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위험한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되고, 이는 곧 ‘위험의 상징’으로 통용되고 있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해 ‘사이코패스 자가 진단법’이 등장할 정도로 이에 대한 경계심과 호기심은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전문의에 의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게 된 사람은 사회에서 ‘위험인물’ ‘경계대상’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같은 진단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흉악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섣불리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는 범죄정책은 매우 위험하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공동체의 유대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존재임을 부정하는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범죄자의 교화가능성을 제로화시키고, 국민들로 하여금 강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요하는 정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이와 관련 서강대 이 교수는 “정부와 일부 언론은 ‘대국민 사이코패스 공포증’을 은연 중에 확산시키고, 또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며 “이는 ‘공안정국으로 회기 시키려는 움직임이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언론들은 평범한 시민이 ‘언제든지’ ‘누구라도’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무고한 희생양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실제 이상으로 과도하게 증폭시키고, 이렇게 확산된 사이코패스 공포증은 정치권력이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공권력 강화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또 이 같은 공포증은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치안부재, 부실한 초동수사 등의 정부의 책임을 교묘히 희석시키고 오로지 개인의 폭력성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권력유지 수단으로 여론 호도 안 돼”

실제 정부는 ‘법질서 강화’ ‘치안’ 등을 내세우며 감시 및 통제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범죄예방에 대한 대책으로 CCTV 확대 설치, 검문검색 강화, 중범죄자 얼굴공개, 유전자 정보활용을 위한 유전자법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의 뜻을 밝혔다. 또 한나라당은 감형이나 사면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제’ 도입과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등을 법제화하겠다고 공포했다. 이와 동시에 실질적 폐지상태였던 사형제 부활에 대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사실상 범죄자의 인권, 생명권 등에 대한 가치는 포기하겠다는 것.

이와 관련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형제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최근 강호순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와 여당은 사형조기집행, 인권유린 정책 등을 펼치려 하고 있다”면서 “이는 치안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 여론을 빌미로 감정적이고도 시대착오적 통치방식”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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