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도, 노동자도 아닌 나의 정체는 도대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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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도, 노동자도 아닌 나의 정체는 도대체 뭡니까?”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2.16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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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사장님의 비애…레미콘∙덤프트럭 기사 등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특수고용노동자’,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잔뜩

단결권∙교섭권 없어 사용자 단체와 대화도 못해
하청업체 종속돼도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서 제외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리저리 수수료만 뜯겨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정부의 승인을 받고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벌여왔던 전국건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이 ‘불법노조’로 전락할 위기해 처했다. 지난해 대한건설협회 등 14개 사용자 단체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동부에 올린 “근로자가 아닌 레미콘, 덤프 등 차주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것은 노조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 경우에 해당돼 위법”이라는 내용의 진정이 받아들여졌다. 이에 서울 남부지청은 해당 노조에 자율시정 명령을 내리고 시정되지 않을 경우 법외노조로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차주들이 노조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이들 차주들은 “이름만 ‘사장님’이지 회사에 소속돼 있는 노동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서 “표면적으로만 업체에 고용돼있지 않을 뿐 해당업체에 종속돼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05년 10월 13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덤프노동자 총파업투쟁 출정식’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차라리 죽여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수건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건설노조와 운수노조는 각각 2000년, 2006년 정부의 승인을 받아 설립됐다. 물론 설립당시 해당 노조에는 레미콘, 덤프 등을 소유하고 있는 차주들도 조합원으로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노조는 그간 정부로부터 조합원 충족조건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용자단체와도 지속적으로 교섭을 맺어왔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 동안에도 개인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 차주들을 ‘진짜 노동자’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개인 소유의 차를 이용해 수익을 얻는 이들 ‘사장님’들을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해 노동자로써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차단했던 것. 차주들이 ‘회사 소속 근로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들도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 신분이었다. 건설회사 소속의 정규직 노동자였던 레미콘 기사의 경우, 업계에서 기사에게 트럭을 떠넘기고 차량을 지입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유행처럼 확산돼 이들 기사들은 갑자기 ‘노동자’에서 ‘사장님’으로 신분이 상승된 듯 보였다.

기형적 고용관계…기형적 임금 체계

▲ 건설기계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난해 6월 16일 성남시 수정구 한 주차장에 건설차량들이 피켓을 내걸고 줄지어 주차돼 있다.
건설운송노조 소속의 한 조합원 A씨는 90년대 초반 모 건설회사에서 월급 80만원에 상여금 400%를 받고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러던 중 회사측은 A씨에게 “돈을 빌려 줄테니 회사소유의 트럭을 구입해 개인사업자로 일하라”고 제안했다. 개인사업자로 전환될 뿐 일하는 방식 등은 모두 다 그대로라는 것.

그러나 A씨는 “말이 제안이지 거절할 경우 회사를 그만둬야할 분위기였다”며 “결국 퇴직금에다가 빚까지 얻어 그동안 몰고 다니던 회사소유의 트럭을 구입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 날 이후 A씨는 더 이상 모 건설사 소속의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인 ‘사장님’이 됐다. 회사와도 고용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었다. 또 개인사업자로 전환되고 나니 월수입이 크게 늘어난 듯 보였다. 하지만 기름 값, 보험료, 수리비, 차량유지비, 할부금까지 내고 나니 남은 돈은 월급쟁이 당시와 달라진 게 없었다는 게 A씨의 주장.

그런데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노동조건이었다. 이후 회사에서 호출하면 한밤중이건 휴일이건 무조건 달려 나가야했다. 그래야 지속적인 계약관계가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 물론 야간수당이나 휴일수당 등의 초과임금도 없었다. 게다가 기름가격이 올라도 회사에서 지급하는 운송료는 그대로였고, 이는 모두 다 A씨가 부담해야 할 몫이었다.

또 A씨가 계약기간 만료 전에 회사를 옮길 경우 회사에서 빌려준 차량 할부금을 한꺼번에 갚아야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이렇게 A씨가 모 건설회사에서 일하며 차량 할부금을 갚는데 7년이 걸렸다.

그런데 차 값을 다 치른 후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회사측은 A씨에게 “95년식 이하인 차와는 계약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통보를 보내왔다. 결국 그는 8천만원의 빚을 지고 또 다시 중고차를 구입해야만 했다. 게다가 지난 10여년 간 경유가격이 5배가량 치솟은 반면 운송료는 제자리걸음인 상태라 이제는 오히려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 됐다.

“시키는 일은 다했는데, 노동자가 아니라니…”

▲ 2007년 6월 26일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특수고용노동자 들이 한나라당 강원도당사 인근 인도에서 집회를 갖고 ‘노동3권 쟁취’를 촉구하는 투쟁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A씨와 같은 개인사업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업체에서 시키는 일을 하고 있어도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돼 있지 않아 사용자단체와의 교섭을 통한 애로사항 전달도 불가능했다. 노조에 가입돼 있지만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있는데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것.

때문에 사용자단체는 이들과의 교섭은 물론 협상테이블로 나올 필요가 없다. 당연히 이들의 파업도 불법이다. 지난 여름 쇠고기 파동 때와 같이 온 나라의 물류를 통째로 멈추는 방식의 집단행동이 아니면 이들의 이야기는 전달되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운송료 인상, 기름 값 지원 등이 아니다. 이들 덤프, 레미콘 등 화물차주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사용자단체와의 교섭을 보장하는 데 있다. 이에 건설노조, 운송노조 등은 사용자단체와 해당 회사 기사들과의 종속관계를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노동3권 보장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부가 사용자단체의 진정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와 관련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윤애림 정책위원은 “사용자단체는 운전자들의 고용을 외부화한 지입제를 도입해 운송노동자들에 대한 책임회피를 피하기 위한 ‘非노동자화 전략’을 추구해왔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은 이어 “겉으로는 회사와 차주가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차주들은 회사의 출퇴근 시간과 배차?잔업지시를 따라야하고, 해당 업체에 직접고용된 운전기사와 동일한 조에 편성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며 “게다가 말로만 개별사업자일 뿐이지 마음대로 일을 쉴 수도 없으며 차량에는 회사명의가 도색되고 회사로고가 작업복을 입고 근무하도록 돼 있다. 심지어 지난해 건설∙운송노조 파업 이전에는 여가시간에 다른 회사의 운송업무도 하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고 밝혔다. 즉, 이들 차주들은 개별사업자지만 회사에 소속된 운전기사와 똑같은 근무방식으로 일해 왔으며, 따라서 해당업체에 대한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얘기다.

‘배차사무실-건설업체’ 배불리는
열심히 일한 덤프트럭 ‘사장님’

현재 덤프트럭 대여업자의 60% 이상이 차주 겸 기사인 특수고용형태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기계를 소유하기보다는 임대형태로 활용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업체가 건설기계를 임대형태로 활용할 경우 업체는 유지비, 감가상각비 등의 비용을 임대(하도급)구조를 통해 아래로 전가하고, 동시에 건설기계 기사에 대한 인건비, 책임도 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차주들은 개인적으로 건설업체에 일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이들은 하청업체나 운반업체, 이른바 ‘배차사무실’을 통해 일감을 얻고 있다. 덤프트럭은 차주가 소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차주는 하청업체에 종속돼 있는 형태를 띠는 것. 차주 개인이 직접 발로 뛰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업체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인맥을 활용해 일감을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주는 운송물량을 알선해주는 배차사무실에 강하게 종속되게 된다.

또 배차사무실은 실질적인 사용자인 건설업체 및 골재업체 등과 특수고용노동자 사이에서 노동력의 공급 및 보수의 지금을 담당하면서 수수료를 가져가는 중간착취기관으로도 볼 수 있다. 때문에 덤프트럭 차주 겸 기사는 법적으로 노동자 신분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받는 피해와 간접고용, 하도급에서 받는 2차 피해까지 감수해야한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산업구조 자체가 차주들이 회사로의 직접고용이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로 전락되게끔 만들어져 있다. 이는 노동자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산업구조가 만든 결과”라며 특수고용노동자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노동3권 보장을 주장했다.  

특수고용노동자 산재혜택도
레미콘기사 등 4개 직군만

일각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특정 업체에 대한 종속성이 없어 오히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윤 의원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한 업체에 강하게 소속돼 있는 편이 생활에 안정감을 느낄 것”이라며 “소속된 곳이 없으면 일거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수입이 들쑥날쑥해 여러 업체를 돌아다니며 ‘날 좀 써달라’고 부탁해야한다. 그렇게 해서도 일거리를 얻지 못하면 그 달의 수입은 없는 꼴”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어 “이들 차주들은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지만 일정한 물량, 안정적 수입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최하위 계층’과 다를 바 없다”며 “회사 소속 노동자들과 똑같은 노동을 하고도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단순한 노조설립과 파업,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한다. 4대보험 가입도 먼 나라 얘기다. 이들이 주장하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지난해 7월부터 레미콘 기사를 비롯한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 중 4개 직군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게 됐으나 이를 제외한 나머지 특수고용자들은 노동현장에서 발이 부러지거나 목숨을 잃어도 현재로서는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한다. 

이에 지난 17대 국회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단체교섭권 등 노동자로서의 일부 권리를 인정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으나 처리되지 못해 폐기된 바 있다.

한편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는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를 조직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고용관계의 존재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의 범위를 결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은 2008년 11월 기준 ILO 회원국 182개국 149개국이 비준한 기본협약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나 ILO 기본협약 2조는 ILO ‘협약국이라는 그 사실만으로 기본협약에 내포된 기본적인 권리에 관한 원칙들을 ILO 헌장에 입각해 신의에 따라 준수하고 존중하며 촉진하고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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