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졌지만 약 없이 살 수 있는 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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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졌지만 약 없이 살 수 있는 날 올까”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2.1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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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외국인보호소 참사’ 2년 그 후…생존자에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악몽

치료차 재입국 했지만…한국정부, “3년간 정신과 치료비만 부담하겠다”
2∙3차 피해 치료도, 취업도 불가능…생활비 없어 치료 도중 돌아가기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이주노동자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한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지난 11일로 만 2년이 지났다. 하지만 당시의 생존자들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고 후유증과 함께 생활고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생존자 17명 가운데 현재 치료를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사람은 모두 15명. 이들은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화재 당시 마신 유독가스 탓에 생긴 호흡기 질환으로 하루하루를 약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었다. 또 장기적인 약 복용으로 위장장애 등 합병증까지 앓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미비한 상태라는 게 사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다. 게다가 이들에게 치료를 위해 발급된 비자는 ‘치료’만 가능할 뿐 ‘취업’은 불가능하도록 돼 있어 계속되는 생계압박으로 치료를 마치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하 외노협) 강당에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2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당시 사고에서 살아남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나란히 놓인 10개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떨궜다. 끔찍했던 2년 전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일 터. 하지만 이들에게 당시의 고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사고 당시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여수외국인보호소에 억류돼 있다가 변을 당한 이들 생존자들은 사고 2개월 후 보상금 1000만원을 받고 강제 추방됐다. 이후 2007년 8월 법무부는 이들과 사고 발생 후 3년(내년 2월)까지 치료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 이들 생존자들은 치료차 다시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게 생존자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다.

외노협에 따르면 양해각서 체결 당시 우리정부가 약속한 의료지원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정신과 치료비 뿐이었고, 합병증에 대한 치료 책임은 언급되지 않았다. 또 법무부는 이들에게 취업이 불가능한 ‘G1비자’(치료·소송 등을 이유로 3개월 이상 머물러야 할 때 발급되는 비자)를 내줘 치료를 위해 머물러 있을 동안의 생활비조차 벌 수 없도록 제한했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취업은 불법이고, 우리 정부의 체류비 지원도 전혀 없는 상태라 치료를 위해 입국한 이들 생존자들은 외국인노동자쉼터를 전전하거나 노숙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 탓에 지난 1월, 17명의 부상자중 2명은 생활비가 없어 중국으로 돌아갔다.

치료목적 ‘G1 비자’로는 취업 불가능해 생계 막막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중국인 루보(47)씨는 “다시 찾은 한국에서 많은 좌절과 실망감을 느꼈다”고 현재의 심경을 전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왼팔 전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루보씨는 양해각서가 체결되던 지난해 8월 재입국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장애사항은 우리정부의 치료지원 항목에 해당하지 않아, 그는 왼팔을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약의 부작용으로 손발에 마비현상까지 일어날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됐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청소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으로 돌아가면 그나마 한국정부가 지원해주는 정신과치료마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간간히 청소일을 도와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여러 군데의 사업장을 찾아갔지만 치료비자라는 이유로 고용하길 꺼려했다. 또 간신히 직장을 얻어 일을 했는데 월급날이 되서 ‘치료비자’라는 이유로 임금을 받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정상적인 임금보다 돈을 적게 받는 것은 ‘다반사’고 고용주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은 ‘일상’이다.”

생활고로 인한 고통 외에도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도 상당하다. 루보씨는 “하루하루를 약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며 “언제쯤이면 약 없이 살 수 있을지…”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루보씨는 사고 이후 심장에 이상이 생겨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장면만 봐도 호흡이 가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 이외의 비용에 대해서는 개인부담이기 때문에 치료받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일용직으로 번 돈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비싼 치료비는 루보씨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피해자인 양정혜(38)씨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양씨는 최근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산재보험 대상자라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양씨는 비싼 치료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가족들이 중국에서 보내 온 ‘고약’으로 아픔을 견뎌냈다.

또 양씨는 하루에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는 것 같다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지금 먹고 있는 약의 종류와 양도 굉장히 많은데 앞으로도 평생 약을 먹어야만 살 수 있게 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는 그는 “화재 당시 건물 3층에서 시신을 본 뒤 환청 등으로 수면 부족과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약을 안 먹으면 잠들기 어려운 것 뿐만 아니라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힘들다”고 전했다.

“차라리 먹고 잘 수 있는 감옥이 낫겠다”

▲ 여수출입국관리 사무소 외국인노동자 참사 2주년을 맞은 지난 11일 전남 여수시 화장동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앞 인도변에서 여수진보연대와 여수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인권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주노동자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은 참사 2주년인 지난 11일 목동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사고 재발방지 대책, 참사 생존자에 대한 정부의 책임보상을 촉구했다.

이주민여성상담소 안현숙 소장은 “피해자들에게 정신과 치료비 외에 일체의 체류비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일하지 말고 치료만 받으라’는 정부의 입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차라리 감옥에 가둬두는 편이 마음 편하게 먹고 잘 수 있겠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이어 “정부가 약속한 체류기간인 3년이 지나면 피해 노동자들은 강제 출국당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후 후유증에 대한 막대한 약값은 누가 책임져야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천 외국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눈 가리고 아웅’식 이라는 것.

▲ 2007년 2월 11일 오전 화재 참사로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당시 화재가 발생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내부 현장 모습.
이와 관련 법무부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치료목적으로 입국한 이들 외국인들에게 취업비자를 줄 수 없다”면서 “또 당시 화재로 인한 2, 3차 피해 치료비까지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7년 2월 11일 새벽 3시55분께 법무부 산하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3층 외국인 보호실에서 중국인 김모씨가 방화, 10명이 목숨을 잃고 17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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