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청소년들의 일그러진 용돈벌이 방식…‘조건사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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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청소년들의 일그러진 용돈벌이 방식…‘조건사기’를 아시나요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2.06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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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소리 들렸다 출동하자”…원조교제 성매매男 협박해 금품 갈취한 10대 13명 덜미

‘조건녀+협박조+망조’…치밀한 범행 시도
청소년 탈선방지 사전․사후 정책 ‘백지상태’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인터넷을 통한 ‘청소년 사이버 범죄’가 활개치고 있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생면부지의 청소년들이 채팅, 카페 등을 매개로 만나 범행을 모의하고, 범행대상을 물색하는가 하면 온라인상에서 만난 사람과 은밀하게 性을 거래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은 청소년 중에서도 ‘가출청소년’들의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데 이들은 ‘채팅’ 등을 통해 또 다른 가출청소년을 만나 무리지어 생활하고, 또 역시 같은 ‘채팅’을 통해 용돈벌이도 하고 있었다. 돈을 얻기 위해 원조교제는 물론이고 원조교제를 한 성인에게 이를 빌미로 한 금품갈취와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범행수법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조건만남(성매매를 조건으로 하는 만남) 사기’의 준말, ‘조건사기’로 불리며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추세다.

▲ 원조교제를 소재로 한 영화 <사마리아> 중 한 장면.
미성년자와 조건만남을 한 성매매 남성들의 약점을 이용해 금품을 뜯어온 10대 가출청소년 십여 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지난 3일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원조교제를 한 성인남성들을 협박해 금품을 빼앗은 A군(17) 등 10명을 구속하고 B양(16)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C(27)씨 등 미성년자와 성매매 한 남성 6명을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가출청소년들은 지난해 12월 11일 밤 11시 19분께 자신들의 숙소인 경기도 수원의 한 오피스텔로 성매수남 C씨를 유인, C씨가 미성년자인 조건녀와 성관계를 맺고 있을 때 현장을 급습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으로 3차례에 걸쳐 30여만 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인터넷 모 커뮤니티 ‘가출한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이들 가출청소년들은 수원의 한 오피스텔에 모여 살면서 생활비, 유흥비 등의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은 성매수 남성들이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악용해 역할을 분담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사이버시대, 가출해도 숙식 걱정 없다?

이 사건에서 성매수남과 성매매를 한 일명 ‘조건녀’ 역할을 했던 D양(17․불구속)은 지난 겨울방학 당시 부모와의 마찰로 가출을 감행했다.(현재는 집으로 돌아간 상태) 하지만 당시 D양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지낼지 걱정을 하기는커녕 가벼운 발걸음으로 PC방을 찾았다. 왜냐하면 가출청소년들이 인터넷 모임을 통해 만난 후 함께 모여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과 합류하지 못하더라도 집에서 챙겨 나온 약간의 돈으로 당분간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인터넷에서 D양이 머물 곳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또 ‘여자’라는 사실은 남자에 비해 비교적 유리했다. 원조교제 등을 통한 ‘용돈벌이’가 용이하기 때문.

D양이 머물게 된 곳은 A군 등이 생활하고 있던 수원의 한 오피스텔. 당시 그곳에는 십대 중반부터 20대 초반의 가출인 7~8명이 기거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아닌 청소년 쉼터에서 만나 함께 살게 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매수男, “원조교제 안했다”
범죄사실 숨기기에만 급급

경찰에 따르면 가출청소년들이 본격적으로 조건만남 사기행각을 벌여온 것은 지난해 11월경부터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으로 성매수남을 모집해 부천, 수원 등지로 유인, 해당 남성과 조건녀가 성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둔 뒤 ‘출동신호’인 조건녀의 신음소리가 들리면 현장으로 들이닥쳐 입막음의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성매수남들이 원조교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도록 실제로 성관계를 맺고 있을 때 현장에 침입하는 고단수 전략을 구사했으며, 매 범행시마다 ‘조건녀’, ‘협박조’, ‘망조’ 등 3~4명으로 구성된 팀제로 활동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로 분류되는 ‘원조교제’를 한 성매수남들이 돈을 빼앗겨도 법적처벌, 사회적 지위 박탈 등의 이유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악용해 용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왔던 것. 심지어 이들 조건만남 사기단의 휴대전화 내역조사와 심문을 통해 성매매 사실이 드러난 남성들조차도 경찰에서 “연락만 취했을 뿐 만나지 않았다” “만났지만 상대가 맘에 들지 않아 돌아갔다” 등의 변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청소년들에게 협박을 받아 돈을 갈취 당했던 남성들 대부분이 처벌이 두려워 성매매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며 “또 시인한 경우에도 갈취 금액을 축소하는 등 정확한 피해사실을 숨기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피의자들은 십여차례의 범행 혐의만을 시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성매수남들의 피해액수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원조교제 방치 언제까지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가출 후 성매매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생활비가 필요해서’다. 유흥에 앞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

하지만 청소년의 가출과 그로 인한 성매매 고리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거의 백지상태인 상황이다. 청소년 성매매의 90% 이상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이뤄지는데도 정부의 관리·감독은 부실하기만하다. 하루에도 수 백 개씩 생겼다 사라지는 인터넷 사이트를 모두 모니터링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일까. 관련부처가 인터넷 매체환경 모니터링을 위해 배치하고 있는 직원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동청소년매체환경과 직원 중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있는 직원은 단 3명뿐이다.

가출청소년들의 사후관리 역시 미흡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청소년쉼터가 지목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정부지원과 후원금이 줄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쉼터의 개수도 많지 않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 따르면 청소년쉼터는 전국적으로 100여개 미만이다. 협의회가 파악한 93개소 중 77개소만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는 민간 법인이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일 현재 모 포털사이트 가출 관련 카페 중 하나인 ‘가출한 십대들의 모임’의 회원수는 11,045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이와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살 동성 또는 이성을 구하고, 함께 ‘용돈벌이’ 범행에 가담할 또래를 찾고 있다. 이 사이트는 해당 포털사이트에 ‘가출’이라는 단어만 입력하면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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