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 화마가 남기고 간 3대 의혹…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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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참사> 화마가 남기고 간 3대 의혹…진실은?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1.22 2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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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VS 책임추궁’ 불협화음 속 은폐되는 억울한 5人의 恨

① 화염병 둘러싼 “누가 불냈나” 책임공방… ‘진짜 진실’은 어디로
② 농성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 전격 투입… 누구를 위해 달려왔나
③ 여당, ‘강경진압 책임론’ 물타기 의혹… ‘전문 시위꾼’ 투입 됐었나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경찰특공대와 철거민들의 충돌로 빚어진 ‘용산철거민 참변사태’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인터넷・종이・방송 등 대다수의 언론사들은 용산참사와 관련된 정치・사회 뉴스를 하루에도 수백여건씩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사건발생 후 수일이 지나도록 정작 사건의 진상은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어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 지난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강로 재개발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 진압이 진행된 가운데 시위대가 옥상에 설치한 망루가 불에 타고 있다.
사건이 벌어진 지난 20일 기자가 찾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철거예정지 남일당 빌딩주변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상태였다. 이날 새벽 재개발에 따른 적정보상비를 요구하며 남일당 빌딩 옥상 점거농성을 벌이던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소속 회원 30여명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전철연 회원들이 가지고 있던 시너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경찰 1명을 포함한 6명의 사망자와 23명(철거민 6명, 경찰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철연 회원 30여명은 하루 전인 19일 오전 5시반께 이주대책마련을 요구하며 남일당 5층 옥상을 점거, 장기농성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 온 철재와 나무를 이용해 망루를 설치하고 경찰과 대치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부터 사건이 일어나던 20일 새벽녘까지 경찰에게 새총을 쏘거나 염산이 든 화염병과 벽돌을 투척하는 등 과격한 방법으로 저항했다. 이에 최루액이 섞여있는 물대포로 맞서던 경찰은 20일 새벽 컨테이너를 동원한 강경진압에 나섰고, 그 와중에 시너에 불이 붙으면서 철거민들의 시위는 ‘대형참사’로 종결됐다.

강경진압이 원인? 화염병이 원인?

▲ 지난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한강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살수차와 특공대를 동원해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화재의 원인은 무엇일까. 경찰과 철거민 양측 모두 인화물질인 ‘시너’를 화재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책임은 서로에게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는 지난 22일 브리핑을 통해 “철거민 측이 던진 화염병 때문”이라고 잠정결론 지었다. 발화 지점은 정확히 가려지지 않았지만 사건 발생 당시 건물 옥상 망루 안 철거민이 가지고 있던 불 붙은 화염병에 의해 2~3층에서 불이 발화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철거민들을 조사한 결과 화염병을 던진 철거민을 지목한 사람이 있다”면서 “그러나 (화염병을 던진 것으로) 지목된 사람은 이 같은 사실을 전면부인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철연측은 이 같은 검찰의 입장과 달리 “경찰이 컨테이너를 타고 망루 안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불이 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계속되는 물대포 진압 등으로 망루가 흔들려 인화물질이 쏟아졌고, 철거민들이 외부로 던지려던 화염병이 물대포에 맞아 다시 망루 속으로 되돌아오면서 화재가 발생하게 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당시 화재현장을 목격했던 많은 시민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우모(남・42)씨는 “경찰이 컨테이너를 타고 망루로 두 번째 진입을 시도하던 때에 갑자기 ‘펑’하는 굉음과 함께 망루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박모(남・45)씨는 “정확한 화재 원인은 모르겠지만 경찰이 컨테이너 진압을 시작한 지 4분여 만에 망루가 폭발했다”면서 “아랫 층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이었다면 망루 속에서 불길이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들에 따르면 경찰의 과잉진압이 대형참사를 불러일으켰다는 말로 귀결된다.

‘청장에 의한,대통령을 위한’ 특공대 출동?

▲ 21일 밤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가운데 故이성수(50)씨의 부인 권영숙(48)씨가 고인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
경찰특공대 투입도 논란거리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시위, 집회, 고공농성 등을 이어오고 있지만 농성을 시작한 지 불과 25시간 만에 특공대가 투입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이 100여m 높이의 울산 현대중공업 굴뚝에서 30일째(지난 22일 기준)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특공대의 진압작전은 없었다.

특히 용산 철거민들은 시너, LPG가스 등 인화물질을 가지고 있어 강경진압으로 인한 피해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강도 높은 진압은 강행됐다. 또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공개한 경찰 내부문건에 따르면 ‘화재 등 위험 상황이 예상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어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질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특공대를 투입한 진압작전을 두고 외부에서는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성과달성을 위해’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초기진화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목소리는 경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전・현직 하위직 경찰관 모임인 대한민국무궁화클럽 전경수 회장은 지난 22일 모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용산 참극은 김석기 내정자의 과잉 충성심에서 불거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전 회장은 또 “30여명 남짓의 농성자를 진압하기 위해 2천여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경찰을 컨테이너 박스로 올려 보낸 것 자체가 비인간, 비인격적”이라고 비난하며 김 청장의 사법처리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무리한 과잉진압’이라는 비판은 받을 수 있지만 지휘계통상 권한이 있는 김 청장이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결정한 작전이므로 형사상 책임을 묻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22일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 청장 사퇴론도 새어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참사에 ‘전철연’ 포장 씌우는 까닭은?

▲ 지난 22일 오전 경찰로부터 시신을 인계받지 못한채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임시 합동분향소에 놓인 고인들의 영정.
경찰은 용산참사로 사망한 철거민 5명 중 3명, 현장에서 연행된 사람의 상당수가 외부인이라고 발표했다. 몇몇의 용산 4구역 지역주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철연 소속의 회원이라는 것. 이 같은 까닭에 이번 용산 참사의 배후로 전철연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여당은 외부세력 개입설과 함께 고의적 방화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전철연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용산지역 철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면서 “전철연 소속의 회원들 모두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어 자발적 연대로 동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철거민들은 부자들은 위한 재개발 때문에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이 추운 겨울에 거리생활을 하고 있다”며 “이는 대부분의 철거민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는 아픔”이라고 전했다.

20일 참사현장을 찾은 유모(여・55)는 화재로 까맣게 그을린 건물을 바라보며 “얼마나 뜨거웠을까…”라는 말을 연방 내뱉으며 오열했다. 유씨는 ‘유가족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을 “철거민이 농성중 화재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경기도 광명지역의 철거민”이라고 소개했다.

유씨는 “유가족이라서 우는 게 아니다. 같은 철거민으로써 이들의 농성이 남 일 같지 않았는데 이런 변까지 당했다”며 “나도 지난 2월 강제철거 당해 현재 광일초등학교 근처 공사장에 천막을 쳐놓고 생활하고 있다. 재개발・뉴타운은 희망이 아닌 중서민들의 애환”이라고 성토했다. 

‘배후설’ ‘폭력적’ 물타기로 ‘책임론’ 탈출?

하지만 정작 입법권을 갖고 있는(서민을 위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정부 여당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책임 규명보다 철거민들의 폭력성만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 21일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너에 불이 붙어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고의적 방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같은 당 소속 이은재 의원도 “경찰이 화염병을 던지는 등 과격시위양상을 띤 철거민들의 농성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였다”며 “철거민들은 반성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여당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잉진압한 경찰에 대한 책임론에 물타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물론 철거민들이 화염병, 벽돌 등을 투척한 것은 명백한 폭력시위다. 하지만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두고 고의방화 가능성까지 제기한 것은 ‘과잉진압 물타기’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시에 따르면 세입자 890명(주거 456명, 영업 434명) 중 85.7%인 763명에 대한 보상이 완료됐다. 나머지 127명의 세입자가 보상액 규모를 놓고 반발해 온 것.

보상이 완료된 세입자 중 2006년 1월 21일 이전부터 거주하던 주민들은 100만원(99㎡ 기준)의 이사비와 4인 가족 기준 1400만원의 집세를 받았다. 또 2007년 6월 7일 이전부터 영업하던 상가건물 세입자들은 3개월치 수입을 보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를 하지 않은 점포 세입자와 주택 거주자들은 지난 4월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 후 용산구청과 시행사 등을 상대로 재개발 단지의 철거가 완료될 때까지 장사할 수 있는 임시상가와 임대주택, 또 재개발 후 세입자 권한을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 한 철거민은 “누구를 위한 도시개발이냐. 우리가 재개발 해달라고 했느냐”며 “좋고 깨끗한 곳에서 살게 해주는 거 바라지도 않는다. 새 집에 우선적으로 입주하게 해준다고 해도 우리는 차액을 지불할 돈도 없어서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저 우리가 살던 그 집에서 그냥 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더 바라는 것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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