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 잃은 나병환자 강제 단종수술 시키고 보상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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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 잃은 나병환자 강제 단종수술 시키고 보상도 없어”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1.16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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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특별법 시행 100일차> ‘이미’ 기초생활수급자인 환자에게 의료∙생활지원 약속해놓고 ‘이중지원 금지’ 웬 말

국가배상금도 없고 예산 70%는 기념관 건립으로
피해자 범위∙정부지원 모두 제한적…실효성 있나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한센병, 속된 말로 ‘문둥병’이라 불리는 병에 걸린 환자들은 그동안 한센인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 되는’ 세상 속에서 살아왔다.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은 전염력에 대한 잘못된 정보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제시대 때 등장한 ‘한센인 격리정책’이 부정적 인식 형성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일본정부는 ‘전염성’을 빌미로 환자들을 소록도 갱생원에 모아 놓고 노역에 동원시킨 것은 물론 강제로 불임시술을 자행하고 이도 모자라 임산부를 낙태시키는 등의 파렴치한 일들을 벌였다. 불행히도 이 같은 관행은 해방이후에도 지속됐고, 한국정부 역시 한센인을 질병관리의 대상이자 언제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집단으로 분류해왔다. 그러던 중 일본정부는 지난 2006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한센인 보상법을 통과시켜 우리나라 한센인 382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우리나라 역시 한센특별법을 제정해 지난해 10월부터 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의 특별법은 일본의 한센인 보상법보다 미흡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죄’도 ‘보상’도 없다. ‘생색내기용’ 법률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한센병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소록도에서 한센병 치료를 받고 있는 장모(88∙남)씨는 일본의 한센인 보상법에 따라 지난 2006년 9월 일본정부로부터 8백만엔의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장씨는 이 때 받은 보상금으로 위암에 걸린 조카 며느리의 수술비를 대주고, 교회에 헌금을 했다. 또 소록도에서의 생활을 도와주고 있는 도우미들에게 작은 성의표시를 했다. 사실 장씨에게는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보상’보다 일본인들에게 받은 폭력, 감금 등 억울함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하지만 이 같은 보상도 일본정부에 보상금 지급을 요구한 한센인 441명 중 382명(1월 2일 기준)만이 받을 수 있었다. 일본정부는 소록도 갱생원에서 작성된 한센인 명부와 진료기록 등 비교적 간단한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했지만, 한국전쟁 등 난리를 겪는 과정에서 병원 입소자료가 소실된 일부 한센인들은 ‘소록도 인권유린’ 경험을 증명해낼 자료가 없어 보상을 받지 못한 것. 그렇다면 우리나라 한센특별법의 내용은 그들의 아픈 상처를 감싸줄 수 있도록 만들어졌을까.

‘피해자’ 되는 길, 단 세 가지 뿐

안타깝게도 한센인은 물론 전문가들은 특별법을 두고 ‘생색내기용’ 법률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한센인의 인권보호와 복지증진, 과거의 인권침해와 피해보상, 재발방지에 대한 국가책무 등이 명시돼있지 않은 것은 물론 보상은 커녕 피해자의 범위마저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한센특별법에 따르면 정부의 의료∙생활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한센피해자’로 정의되는 경우는 세 가지 뿐이다. 첫째, 해방 후부터 한센인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이 폐지된 날까지인 1945년 8월 16일~1964년 2월 8일까지 요양시설에 격리수용돼 폭행, 부당감금 또는 단종수술의 피해를 당한 사람.

둘째, 대표적인 한센인 학살사건인 ‘소록도 84인 학살사건(1945)’ ‘비토리섬 살인사건(1957)’에서 학살을 당한 사람, 셋째는 ‘오마도 간척사업사건(1962~64)’ 당시 강제노역에 시달린 사람 등이다.

즉, 국가에 의해 폭력∙불임수술 등의 인권침해를 당해야하고, 그것도 아니면 학살 또는 죽음의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아야만 한센피해자로 인정되고 생활 및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한센인권변호단 조영선 변호사는 “특별법은 한센인들이 수십 년간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았음을 국가가 스스로 인정, 제정된 법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용은 ‘별 책임 없다’는 식”이라며 “피해대상의 한정은 둘째치더라도 특별법에 소요되는 예산의 71% 이상이 한센인들의 삶과 무관한 기념관 건립, 이에 따른 직원급여 등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도대체 누굴 위한 법인지 입법 취지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피해자로 규정돼도, 안 돼도 정부지원 ‘막막’

또 특별법이 요구하는 피해대상 조건에 부합되더라도 정부의 의료∙생활지원을 받는 게 쉽지만은 않다. 법률에서 이중지원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한센복지협회에 따르면 2005년 6월말 기준 한센등록자는 15,984명으로 이중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자는 5,854명, 의료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은 4,35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은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을 경우 특별법상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 게다가 당시 피해를 입었던 한센인들 대부분이 이미 고령으로 사망해 한센특별법이 말하는 피해자 생활지원, 의료지원을 받는 한센인은 극히 적어 실효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에 대해 조 변호사는 “많은 수의 한센인들이 기초수급대상자로 의료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보상∙배상이 아닌 생활∙의료지원을 하겠다고 해놓고 이중지급을 금지한 것은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부인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일본이 한센보상법 전문에 “(한센인 인권유린에 대한) 비참한 사실을 회개하고 반성, 사죄함”이라고 시인하고 보상금을 지급한 것과 달리 “과거 한센인은 수용 과정에서 감금, 폭행, 단종 등의 인권유린을 당했다…그동안 정부 차원에서의 진상규명 노력이나 피해자 등에 대한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실만을 나열했을 뿐 과오에 대한 ‘반성’ ‘사죄’ 등의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또 이에 대한 보상으로 혜택 받을 길이 극히 좁은 생활∙의료지원과 진상규명, 기념관 건립 등의 방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와 관련 가톨릭의과대학 부속 한센병연구소 채규태 소장은 “한국정부에 의해 인권유린을 당했던 한센인들이 적은 혜택이나마 특별법의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감금, 강제노역, 단종 사실 등 개별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사실상 이 과정에서 피해자로 인정되는 게 쉽지 않다”면서 “피해자 ‘인정’ ‘불인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차별과 피해를 막기 위해 특별법은 한센인들에 일괄적인 배상을 하는 것으로 개정돼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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