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사장 구속되면 회사 문 닫아야”…50인 미만 사업장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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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사장 구속되면 회사 문 닫아야”…50인 미만 사업장 ‘대혼란’
  • 신승엽, 김혜나 기자
  • 승인 2024.01.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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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영세 사업장 83만7000여곳 ‘중처법’ 대상
전문인력 부재로 컨설팅 받아도 이행 어려워
예방 아닌 처벌에 집중된 법…현장 ‘한숨만’
경기도 평택시의 한 화장품 OEM 공장 내부. 사진=신승엽 기자
경기도 평택시의 한 화장품 OEM 공장 내부. 사진=신승엽 기자

매일일보 = 신승엽‧김혜나 기자  |  지난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인 모든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며 일선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예방이 아닌 처벌에 중점을 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29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처법이 적용되며 중소·영세 사업장 83만7000여곳이 추가로 포함됐다. 이들은 이미 대부분 사업장에 적용 중인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가졌음에도 추가로 중처법까지 적용되는 것이 부담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는 중처법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 현장에선 사장이 경영부터 일선 업무까지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 등으로 인해 ‘1인 다역’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중처법에 따라 사장이 구속되면 업체는 그 길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주장이다. 안전관리보건체계의 구축·이행에 대해선 경영계도 이견이 없으나, 관련 업무 수행 및 필요 인력 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소재의 한 뷰티업체는 중처법만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해당 업체는 정규직 10여명, 인력소개소에서 추천받은 인원까지 합치면 총 20여명 수준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사업을 운영 중인 이 회사는 일반적인 생산라인과 마찬가지로 기계를 다루는 인력과 포장 등의 인력을 구분한다. 제품(마스크팩)에 사용될 용액 등은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가 다뤄야 한다. 일반적인 생산라인에는 끼임 사고가 가장 큰 재해다. 용액을 다루는 인력은 통에 깔리는 사고나 기계 감전, 화상 등에 유의해야 한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생산라인의 한 기술 근로자는 “중처법이 근로자 보호를 위한 제도라지만, 실제 체감은 어렵다. 인력과 자금이 부족해 추가적인 채용이나 인력이 일시적으로 빠지면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며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납품 물량이 쏟아지고 있어 안전교육 관련해 인력이 빠질 경우, 근로시간을 준수하기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인력을 더 늘리면 적자가 발생해 대표까지 생산라인에 참여한다. 안전관리자 채용은 지켜야 하지만, 회사 부담을 덜기 위해 인력을 더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회사 관계자는 “공동 안전관리자 채용도 고려했지만, 인근 사업장에는 함께 안전관리자를 구하기도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부산의 또 다른 뿌리기업은 처벌에만 방점이 찍힌 중처법의 부작용을 예견된 수순이라고 일축했다. 이 기업 대표는 “산업재해를 최소화해야 하고, 인명피해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당연히 공감하지만 지금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법 이행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현재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사장들까지 나서 현장 업무까지 보는 상황인데, 중처법이 시행됐으니 업계에서 우려하는 범법자 대거 양산 및 기업 파산 등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현장에서 안전사항에 대해 지속적으로 주의를 주더라도, 근로자가 한 순간 방심하면 즉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중처법은 사고의 예방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닌 사업주의 처벌에만 집중됐는데 이는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 현장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중소업체는 중처법 체감이 가장 빠른 편이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을 비롯해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기도 하고, 안전팀 인력까지 따로 마련할 여력이 되지만 중소업장에선 일선 직원이 안전관리 업무를 겸직하는 경우도 많다”며 “물류센터인 만큼 하역·운반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 이전에 안전관리 컨설팅도 받은 적 있지만, 해당 사항들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아직 완료하지 못 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처법 확대 적용으로 지금 일하는 업장도 대상에 포함됐는데, 현장 직원들 중에선 중처법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현장 혼란이 가중되는 와중, 정부는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 추진단’ 1차회의를 열고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83만7000여개소에 달하는 50인 미만 기업이 조속히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할 수 있도록 오는 4월말까지 산업안전 대진단을 집중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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