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물가상승·경기둔화 서민 취약 가구 이중고, 정부 역할 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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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물가상승·경기둔화 서민 취약 가구 이중고, 정부 역할 중하다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승인 2023.06.0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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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지난해 7월 6.3%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이 4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3%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석유류 가격의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전체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는 양상이다. 지난해 상반기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른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작용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2일 발표한 ‘2023년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1.13(2020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3% 올랐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2월 5.0%에서 올해 1월 5.2%로 소폭 상승한 뒤 2월 4.8%, 3월 4.2%, 4월 3.7%, 5월 3.3% 등으로 둔화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0월 3.2% 이후로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보다는 무려 1.7%포인트나 높은 고물가의 지속과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인해 올 1분기 가계의 명목소득은 늘었지만,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실질소득 증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서민 살림살이는 오히려 후퇴했다. 특히 소득 하위 20%의 1분위 가구는 역대 최대인 월 46만 원의 적자를 기록해 경기둔화와 물가 상승의 이중고(二重苦)가 소득 중·하위 가구에 집중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5월 25일 발표한 ‘2023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명목소득은 505만 4,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1분기 482만 5,000원보다 4.7%나 늘어났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소득은 458만 원으로 전년도 1분기와 똑같았다. 월급봉투에 찍힌 숫자는 늘어났지만, 가계의 실질적인 삶은 제자리에 머문 셈이다. 게 다가 전례 없는 세수 부족 사태까지 겹친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 5월 3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4월 국세수입은 46조 9,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56조 8,000억 원 대비 9조 9,000억 원 줄어 세수 부족 규모는 다시 확대됐다. 올 1월 –6조 8,000억 원, 2월 –15조7,000억 원, 3월 –8조 3,000억 원으로 줄었다가 4월 부족 규모가 9조 9,000억 원으로 1조 6,000억 원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전 재정 기조에만 매몰돼 경기 침체기에 버팀목이 되어야 할 정부는 뒷짐 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다간 하반기 중·하위 가구의 경제적 고통이 가중될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의 부작용이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정부 보조금 등이 줄면서 빈부 격차는 확대일로를 치닫고 있다. 전체 소득에서 세금과 연금, 사회보험료 등을 뺀 처분가능소득이 상위 20%의 5분위 가구는 886만 9,000원으로 4.7%나 증가했으나 하위 20%의 1분위 가구는 85만 8,000원으로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분배 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45로 지난해 1분기 6.20보다 0.25포인트 상승했다. 이 지표는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가구원 수로 나눈 뒤 상위 20%의 5분위 가구소득이 하위 20%의 1분위 가구소득의 몇 배인지 계산한 것이다. 배율이 높아질수록 빈부 격차가 크고 분배가 나빠졌다는 의미다. 소득에서 지출을 뺀 가계수지도 상위 20%의 5분위 가구는 월 374만 4,000원 흑자였지만 하위 20%의 1분위 가구는 46만 1,000원 적자였다.

안타까운 점은 하위 20%의 1분위 가구는 실질소득이 1.5%나 줄었지만 실질소비는 오히려 8.6%나 급증했다. 입원비(42.9%) 등 보건 분야 지출,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식사비(22.5%)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가계수지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은 적자 가구 비중이 26.7%로 전년 동기 23.5%보다 3.2%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5월 29일 국제금융협회(IIF)가 이달 발간한 ‘세계부채 보고서(Global Debt Monitor)’를 봐도,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잔액은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102.2%로, 조사 대상인 33개국과 유로 지역 등 34개 중에서 1위였다. 2위 홍콩(95.1%)과 3위 태국(85.7%), 4위 영국(81.5%) 등이 한국의 뒤를 이었다. 더욱이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까지 경기 침체 압박을 받다 올해 들어 호전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 경제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반도체 수출 부진과 고물가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이 지속되면서, 하반기 경기 침체 우려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지난 6월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날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5%로 낮췄다. 지난 3월에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대비 0.2%포인트 낮췄는데, 3개월 만에 더 낮은 전망치를 내놓았다. 내년 성장률도 기존보다 0.2%포인트 내린 2.1%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4월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5%로 낮췄다. 지난해 4월 2.9%이었던 전망치와 비교하면, 1년 사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절반으로 깎아내린 셈이다. 이밖에 무디스(Moody's)도 1.6%에서 1.5%로, 피치(Fitch)도 1.9%에서 1.2%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1.4%에서 1.1% 등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국내 기관들도 마찬가지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25일 올해 한국 성장률을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중국 경제의 회복이 지연되는 등 최악의 상황이 들이닥치는 경우엔 1.1% 성장에 그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달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1.8%에서 1.5%로 낮췄다. 산업연구원도 1.9%에서 1.4%로, 국회예산정책처도 2.1%에서 1.5% 등으로 한국이 저성장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 내다보고 일제히 하향 조정하는 등 하반기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막연히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만 꼭 붙든 채 적극적 움직임이 없다 못해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경기가 침체하면 소득의 격차에 따른 가구별 부담의 격차도 당연히 커지기 마련이다. 재정이 이를 조금이나마 보완하는 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정책 기조다.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저소득 계층에 돌아갈 재원이 줄어 취약계층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감세 정책과 건전 재정 기조로 재정 운신의 입구와 출구 양쪽 폭을 다 좁혀놓았다. 정부는 “예산 집행관리를 철저히 하고, 모든 기금(총 68개 연기금)에서 융통이 가능한 재원을 최대한 동원”하겠다고만 되풀이하고 있다. 결국 민생예산 감축, 예산 불용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만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 예산지출 연기 및 연기금 활용 등으로 재정건전성을 보여주기 위한 숫자놀음을 하겠다는 건 아닌지 의구심만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특히 반도체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1,9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2.2%를 기록하며 내수 역시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소득이 늘어나려면 무엇보다 고용이 개선되어야 하지만 지난해 80만 명대였던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올해에는 20만 명대로 급감했다. 이처럼 경제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땐 정부가 단기적으로 지출을 늘려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따라서 정부는 세수 결손 보전을 넘어 경기 후퇴에 대응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쪽으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도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재정 낭비 요인을 줄이고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긴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재정을 풀어야 할 시점이 분명하다. 재정을 옥죄면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복지 투자가 줄어 서민들 삶이 더욱 피폐해지고 어려움은 가중한다. 게다가 과세는 ‘거위를 울지 않게 하면서 더 많은 깃털을 뽑아내는 기술’임에도 ‘거위에게서 깃털을 덜 뽑아내는’ 이른바 ‘납세 고소득층의 가처분 부를 더욱 늘려주는 팽창 지출’로 일관하다 보니, 저소득계층에게 재분배해줄 재원이 줄어들어 취약 계층에게는 ‘실질적인 소득 감소’ 효과로 귀결한다. 결국 세수 부족 사태에 따른 ‘재정의 소득 재분배 기능 취약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유념해야만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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