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70년 한미동맹의 출발과 전개, 그리고 미래 '불가능했던 동맹 성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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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70년 한미동맹의 출발과 전개, 그리고 미래 '불가능했던 동맹 성공한 동행'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3.06.08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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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고, 미국은 잘못 엮일 것을 염려했다!”

철저한 고증 분석, 세계적 석학들과 대화하며 찾아낸 한미동맹의 진실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다!”
절박한 현실 속에 추진된 한미동맹과 이승만 외교


한미동맹은 미국의 이익, 즉 대소련·대중국 포위전략에 따라 일방적으로 체결되었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른바 ‘계획적 동맹론’ 혹은 ‘음모적 지배론’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애초 미국의 구상에 한미동맹은 없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당시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극동의 약소국과 동맹을 맺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승만의 동맹 요청에 미국은 심지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해 인계철선 구축에 성공한 것은 이승만이 거둔 외교적 승리였다. 이승만이 집념을 발휘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일깨운 것이다.

이렇듯 한미동맹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절박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동맹을 맺으면서 군사안보 이상을 얻었다. 군의 현대화 작업과 장기 경제원조를 협정에 담음으로써 빈곤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다. 이후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 추진되는 데도 한미동맹이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70년 동안 한미동맹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북핵, 전시작전통제권, FTA 체결 등 한미동맹의 주요 쟁점들


소극적인 자세로 망설이는 미국을 설득해 동맹을 맺은 대한민국은 미군과 함께 구축한 안전지대 안에서 경제와 정치 발전에 주력할 수 있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요컨대, 한미동맹의 경제적 가치는 돈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컸다. 우선 과제인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가운데서도 한미동맹은 다양한 모습의 변천을 거쳤다.

5·16 쿠데타와 박정희의 등장은 미국에 큰 당혹감을 주었다. 또한, 카터 행정부 때 한미 간 최악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을 어떻게 보고 대응할 것인지도 미국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북한의 군사적 도전이 거세지며, 특히 핵무기 개발에 나서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한미동맹의 가치가 한층 더 커졌다. 미 국무부에서 가장 큰 부서는 ‘한국과’일 정도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갈등도 일어났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북한에 지나치게 안일하고 유화적으로 대응한다며 성토하기도 했으며 이와 반대로 미국이 무력 사용 가능성과 대북 제재에 중점을 둔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민족’과 ‘동맹’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수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주한미군 주둔 규모, 한미 FTA 체결 등도 한미동맹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우리는 한미동맹 뒤에 웅크리고 있는가, 아니면 혁신하고 있는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미동맹의 발전 과제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현재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신냉전’으로 일컬어지는 국제질서의 격변으로 촉발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좌고우면하며 머뭇거릴 여유가 허락되지 않으며 냉혹한 선택을 요구받게 되었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냉혹한 세계무대에서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담대한 판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결단의 시대에 눈치나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뒤처진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첫 번째 과제는 70년 전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로 한미관계를 재단하는 낡은 사고를 버리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부추기고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다는 사고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과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찾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던 빈곤국이 아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다. 한미동맹의 틀 역시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차원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저자 최형두는 대한민국 민주화 산업화 요람 경상남도 마산에서 자랐다.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인 ‘10・26’을 촉발한 부마민주항쟁을 고등학교 때 목격했다. 1981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계열에 입학한 뒤 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12대 총선을 앞둔 시점인 1984년 당시 사회학과 4학년이던 그는 서울대학교 민주화투쟁위원장으로서 정치활동 규제 전면 해제와 학원 자유화를 요구하는 민정당 중앙당사 점거농성을 주모한 사건 등으로 구속・수감되었다. 20대 초반인 1980년대 내내 ‘왜 미국은 한국인의 민주화 열망을 방관하고 있는지’ 분개했다.

이후 「문화일보」에 재직 중이던 2001년부터 2002년에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외교통상부를 출입하며 북핵 6자회담을 취재했다. 2006년 초부터 2009년 여름까지의 워싱턴 특파원 생활 중 집중적으로 한미관계의 비밀기록을 찾고 브레진스키, 헌팅턴, 월러스타인 등 세계적 석학과 정책책임자들을 인터뷰했다.

이 책 『불가능했던 동맹 성공한 동행』은 저자가 청년 시절 천착했던 물음에 답하며, 글로벌 중추 국가(GPS, Global Pivot State)로서 발돋움해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좌표를 제시한다. 「문화일보」에서 20여 년 동안 기자,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으로 기사와 칼럼을 썼고, ‘제3차 한중일 차세대 리더포럼’ 멤버, 한국기자회협회 국제교류분과 위원장, ‘동아시아 기자포럼’ 한국대표를 지냈다.

국무총리 공보실장,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국회 대변인을 거쳐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마산합포구)에 당선되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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